전투와 문화
중국의 군사 역사는 단순한 군사사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사이기도 하다. 가장 위대한 전투들은 소설, 오페라, 영화, 비디오 게임 등에서 수없이 다시 이야기되어 왔으며, 그래서 문화적 어휘의 일부가 되었다. 중국인이라면 군사사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적벽대전(赤壁之战, 적벽지전)의 이야기는 거의 모두 알고 있다.
적벽대전 (赤壁之战, 208년 경)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다. 북중국을 장악한 군벌 조조(曹操)가 남쪽의 남아있던 독립 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소수였던 손권(孙权)과 유비(刘备)의 연합군은 화공(火攻), 기만 전략, 우수한 해군 전술을 결합해 조조 군을 격파했다.
이 전투가 유명한 이유는 군사적 중요성 때문만은 아니다(중국의 재통일을 60년 간 늦춘 중대한 전투였지만). 그것보다 이 전투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너무나 유명하다. 제갈량(诸葛亮, 제갈량)이 짚으로 만든 배로 화살을 "빌린" 이야기, 황개(黄盖)의 위장 배반, 조조의 함대를 불태운 화공 이야기 등이다. 당신은 또한 비수 전투: 8만 대 80만이 싸워 이긴 전투도 흥미로워할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허구다. 역사 기록보다는 소설 삼국지연의(三国演义, 삼국지연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실제 역사보다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진다. 중국인들이 적벽대전을 떠올릴 때, 실제로 싸운 군사 지휘관들보다 제갈량의 천재성부터 먼저 생각하는 이유다.
상양 포위전 (襄阳之战, 1267-1273)
몽골군에 의해 6년 간 벌어진 상양(襄阳)성 포위전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 중 하나이다. 송나라 장수 여문환(吕文焕)이 지키던 도시는 쿠빌라이 칸의 엄청난 군대를 6년 동안 막아냈다.
이 포위전은 중국 문화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 외세의 침략에 맞선 중국 문명의 마지막 저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상양이 함락되면서 송나라의 운명은 결정되었고, 몽골 출신 원(元)나라가 수립되었다.
진용(金庸)은 이 상양 포위전을 그의 무협 소설 신조협려(神雕侠侣, 신조협려)의 클라이맥스 배경으로 활용했다. 그의 이야기 속 주인공 양과(杨过)가 도성을 돕는 허구적 영웅으로 등장하여 역사적 비극과 무협 판타지를 결합했다.
비수 전투 (淝水之战, 383년 경)
동진(东晋) 왕조의 8만 병력이 전진(前秦) 왕조의 약 87만 병력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전투다. 이 승리는 심리전으로 이룩되었다. 진나라 사령관이 진군을 위해 비수(淝水) 강을 건너야 한다며 전진군에 살짝 후퇴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퇴각 도중 전진군 내부에 공포가 퍼져 결국 대량 탈주했다.
이 전투에서 나온 유명한 성어가 있다. "풍성학례(风声鹤唳, 풍성학례)" — "바람 소리와 학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너무 겁에 질려서 바람과 학 소리마저 적의 공격으로 오인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탈주하는 전진 병사들이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과 학의 울음소리를 진군하는 진나라 군대의 추격으로 착각했다는 이야기다.
장평 전투 (长平之战, 기원전 260년)
고대 중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다. 진(秦)나라가 조(赵)나라를 격파하였으며, 전투의 참혹함은 기록에도 자세히 남아 있다. (이하 내용이 누락되어 번역할 수 없음)